2025. 7. 28. 18:53ㆍ명리학/명리학사
[동양과 서양 각각 인류가 하늘을 보다]
기원전 약3000년경, 바빌로니아로 더 잘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고 있던 수메르인들은 세계
최초로 천문학을 연구하여 천문 측량법을 만들었다.
그들은 높은 곳에서 달의 변화를 관찰하여, 달의
모습이 변화하는 것에 근거하여 1년을 12개월, 모두
354일로 하고, 윤달을 정하고 한 주일은 7일로 정하고
7일의 이름을 별들의 이름을 따서 각가 일(태양신), 월
(달신), 화(화성신), 수(수성신), 목(목성신), 금(금성신),
토(토성신)라고 불렀다. 그 후 하루 24시간을 2시간을
한 단위로 하여 12단위 시간을 사용하였으며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시간의 기본 단위, 12시간, 60분,
60초의 개념을 세운 이들이 수메르인들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천문학 수준을 감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원의 둘레를 360도로 나누고 현재의 위도와 경도를
발면하였고, 이러한 수체계가 발전하여서 바빌로니아
시대에 이르러 60진법의 수체계를 완성시켰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고대 이집트인보다 기하학을 제외한
일반 수학분야에서 더 발달하였다. 그들은 위치기수법을
사용하여 수를 나타내었고 모든 역수는 아니지만 역수를
알고 있었으며 제곱까지도 계산하였다. 수학의 이론적
정립만 놓고 볼 때 수메르인들의 수학 발전은 16~17세기
유럽의 수학 수준에 이르렀다고 추정하는 고고학자들과
수학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천문학, 수학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수메르인들은 현재 이라크에 속해 있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주변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리던
지역에서 거주하였다. 토양은 비옥하고 강물은 풍부했
지만 남쪽 평야에서 살기에는 환경적인 2가지 중요한
단점이 있었다. 첫째, 연간 강수량은 인공적인 관개시설
없이 농작물들을 재배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으며, 이
평야는 경사도가 매우 낮은 평지였기에 해마다 봄 수확
기에 홍수로 인하여 농작물이 손실을 입었다. 둘째, 이
지역에는 아주 제한된 종류의 천연자원만이 있었다.
그 시대에 지도자들은 관개시설 같은 광대한 공공사업을
공동으로 함으로써 서로 떨어져 있는 여러 도시 국가들을
결합하여 힘을 모았다.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측량법
을 개발하고 징수하는 데 필요한 회계 업무 등을 처리하기
위하여 매우 높은 수준의 지식과 그에 수반되는 수학의
발전이 요구되었다.
천문학과 수학의 발전을 이루고 살았던 수메르인들의
역사는 바빌로니아 제국 건설로 큰 변화의 시기를 겪는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기원전 2000년경에 셈족이 메소포타
미아 지역을 침략하여 수메르인들을 패배시키고 바빌론
을 그들의 수도로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31년에 아르벨라(앗시리아의 고대 도시) 근처의
가우가멜라 다리오Darius 왕을 정복한 후에 바빌론으로
여행을 했고 거기서 그는 갈대아 사람으로부터 '1903년'
동안 천문 관측을 한 자료들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갈대아 사람들은 그것이 바빌로니아 제국의 창시부터
수집된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추정하여
바빌로니아 제국의 창시를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2234년
이라고 보았다.
한편, 성경의 창세기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바벨탑 사건의
연대는 노아 이후의 네 번째 세대인 벨렉의 시대로 보고
있으며, 벨렉의 출생이 대홍수(기원전 2349~2348) 후
약100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바벨탑 사건을 기원전
2250~2240년 경으로 추정하는 것이 기독교 역사학자
들의 견해이다. 즉, 바벨탑의 건립과 파괴 그리고 바빌로
니아 제국의 설립, 이 두 사건의 시대 비교를 해 보면
바벨탑의 건립이 선행 시기임을 알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수메르인이 지배하고 있던 시절,
이들은 신전의 성격이자 천문을 관측하는 건축물로 많은
지구라트ziggurat를 세웠고 후대로 갈 수록 그 높이는
높아져 갔다. 그들의 중심도시였던 바벨에 건설된 최대
높이 지구라트가 바벨탑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신의
권위에 도전하려고 했던 인간들은 심판을 받게 되고
언어가 혼잡하게 되었으며 세상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어
지금의 다언어 다민족 세상이 이루어졌다는 성경의
기록과 바빌로니아 제국의 설립, 즉 수메르인이 셈족에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빼앗기고 세상에 흩어지는 역사의
흔적과 일치하는 것이 놀랍다.
바벨탑을 세웠던 수메르인들은 왜 신의 분노를 샀고
심판을 받아야만 했던 것일까? 성경 창세기 11장 4절에
따르면 바벨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자 하였고
인간의 이름을 내고자 한다 하였는데, 인간의 이름을
낸다는 부분은 고대 도시국가를 이룬 수메르인들이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를 가지고 지배세력의 우위를
통해 노동력의 착취와 세금의 착취를 시스템화한 종족
이었으며 그들의 지배세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는 의미
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이 신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로
기록된 것이 바벨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자
하였다는 부분이다. 물리적으로 첨탑의 끝을 하늘에
닿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이 문맥의 메타포적 의미는
바벨탑을 통한 천문의 살핌과 이를 통해 신이 만들어
놓은 권위, 즉 우주의 에너지 규칙을 인류가 깨우치기
시작했다는 것이 바로 심판의 더 큰 이유인 것이다.
천기누설의 대가는 종족의 패망과 언어의 흩어짐이
었다. 언어의 분화는 인류의 과학의 발전을 더디게
하였고 천문학과 이를 통한 우주와 자연의 규칙의
탐색 또한 지엽적으로 분리되어 발생, 발전하였고
이 지식이 다시 통합의 단계에 이르는 데 수천 년의
시간이 필요하였으며 아직도 미완의 단계에 있다고
할 것이니 신의 한 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빌로니아의 점성학Astrology
천문학에 깊은 조예를 나타냈던 수메르인들이 건설한
많은 지구라트와 바벨탑이 천문대의 하나였다고 추정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추론이며, 당시 수메르인의
천문관측은 정밀도가 대단히 높아서 일식, 월식 등의
예보도 정확히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천문학의 기술은
고대 그리스에 전해져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우주관
형성에 영향을 끼치며 서양 천문학과 점성학의 시원이
되었다.
수메르인들은 점토판 위에 토큰의 이미지를 그리며 숫자
로 문양을 표시하였고 날카로운 갈대를 가지고 점토판
위에 물건의 모양을 그대로 그리거나 그 물건을 나타내는
토큰을 그림으로써 표현했다. 특히 젖은 점토판에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 뾰족한 모양을 가진 삼각형을 새겨 넣어
만든 쐐기 문자를 사용하였다. 이 쐐기문자가 쓰여진 점토
판은 1840~1850년경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
하였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약 50만 개의 점토판은 이
쐐기문자로 이루어졌으며 19세기 중반 유럽 언어학자들에
의해 해독되기 시작하였다. 이 중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점토판은「플림프톤Plimpton 322」이라고 불리며
<피타고라스 정의>가 기록된 점토판이다.
이러한 설형문자의 기록에 대한 해독을 통해서 고대인들
에게 천문학과 점성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수메르인은 수학과 천문학, 그리고 점성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점성학은 천문학, 수학의 지식체계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점성학 기록이 담겨진 대표적인 점토판은「에누마 아누
엔릴Enuma Anu Enlil」인데 바빌로니아의 점성학을
다루고 있는 70여 개의 평판기록이다.「에누마 아누 엔
릴」은 왕이 천문학자들에게 받은 규칙적인 점성학 보고
서였는데 그 내용의 대부분은 그 당시의 새로운 천체적
사건들을 최대한 묘사하고 그것이 왕에게 유익한 징조인
지를 해석하는 부연설명이 첨가되어 수록되어 있다.
첫째날에 달이 보이게 되면 국토에는 행복이 가득 찰 것
입니다. 그날에 낮의 길이가 보통이라면, 오랜 치세를
의미합니다. 모습을 드러낸 달이 왕관을 쓰고 있다면,
왕께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를 것입니다. 이상은
'이사르 우무에레스'가 보고 드리는 바입니다. (에누마
아누 엔릴 제8권 10번 보고문)
「에누마 아누 엔릴」은 바빌로니아의 천문 점성학 표준
형식으로 편찬된 것이며, 가장 늦은 사본으로는 기원전
194년에 작성된 것까지 있으니 2,000년 가까이 유지된
천문 점성학 기록이었던 셈이다. 이 평판은 기원전 4~3
세기 인도에 전해졌으며 인도에 전해진 후기 평판에는
행성의 기록까지 다루고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주로 왕국이나 국가의 흥망과 농경에
관계된 일 등을 알아보기 위해 천문학과 점성학을 이용
하였고, 이 과정에서 인간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졌던 몇몇 행성들은 신격화되었고, 이들 행성들의
위치와 색깔 등은 고대인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계시 수단이 되었다.
기원전 750년경의 바빌로니아인들은 수학과 천문학에
통달하여 하늘의 모양을 지도로 만들었고, 태양의 궤도를
따라 18개의 조디악 사인Zodiac sign을 고안했으며,
행성들의 정확한 궤도를 계산해냈다. 또 이클립틱Ecliptic
을 360도로 정확하게 나누어 1도는 60분, 1분은 60초로
정했다. 이후 기원전 600년경에 조디악 사인은 12개로
정리되었고 개인의 운명을 점치는 네이탈 챠트Natal
Chart로 발전하는 시원이 된다.
[발췌] 명리학사 김기승, 나혁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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