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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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해의 여정≫ _ 단편 소설 20장 (최종 회)
20장. 다시, 9월 23일 돌아보면, 마흔 해라는 시간은 한 줄로 요약되지 않았다. 그 모든 시절의 철수들이 지금 이 책상 앞에 앉은쉰여덟의 철수 안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어느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그것들을 조용히 눌러 담았을 뿐이었다. 9월 23일 아침, 철수는 여느 때처럼 여섯 시에 눈을 떴다. 운동복을 챙겨 입고 나가, 조깅을 하고 물살을 갈랐다. 돌아와 어머니와 아침을 먹고, 공부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논문 파일을 열었다. 마지막 장, 결론 부분이었다. 철수는 자판 위에 손을 올린 채, 오래 움직이지 못했다. 결론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몇 주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우측 검지 첫마디의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서른일곱 해 전,..
2026.09.12 -
≪마흔 해의 여정≫ _ 단편 소설 19장 (자작 글)
19장. 더 나은 미래 미래컨설팅센터에서 일하며, 철수는 매일같이 숫자와 마주했다. 우리나라 회사원들이 가장 오래 몸담았던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나이는 평균 52세 안팎이었다. 100세까지 산다고 치면, 아직 인생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 시점이었다. 철수는 종종 그 숫자를 손으로 짚어가며 계산해보곤 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도합 16년을 배워, 그 배움으로 30년 남짓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보통의 인생이었다. 그런데 50대 중반에 그 밥벌이가 끝나버리면, 70세까지 현역으로 살아간다고 쳐도 앞으로 15년에서 20년을 더 채워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미 배운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나이에 회사 문을 나선 사람들 중, 자신이 평생 쌓아..
2026.09.11 -
막걸리는 무죄 _ 자작 詩
오늘도 제주 올레길을 걷는다바람에 땀을 훔치고파도에 마음까지 씻으며갈증을 막걸리 한잔으로 달랜다 “캬—”이 청량함이라니 옆자리 손님과말 한마디 건네다 보니어느새 정감이 간다 오늘의 바람도오늘의 바다도오늘의 사람도 이 순간이내 인생의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오늘은 막걸리 한 잔에세상을 품어 본다 그래서 막걸리는무죄다 ※ 9월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현지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 2026년 9월 09일(水, 丙戌日) 원강(沅杠) 씀 -
2026.09.10 -
≪마흔 해의 여정≫ _ 단편 소설 18장 (자작 글)
18장. 다양한 경험 대기업에서의 회사 생활에는, 밖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고단함이 있었다. 급여만 놓고 보면 남들이 부러워할 만했지만,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매일이 경쟁이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도태되는 자리였다. 그런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철수를 버티게 하는 힘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가족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그만큼 책임감도 함께 커져갔다. 2002년, 상담심리사 과정을 밟던 그해에 철수의 첫째 딸이 태어났다. 결혼하고 몇 해가 지나도록 아이가 쉽게 찾아오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시기였다. 그러다 마침내 찾아와 준 귀한 생명이었다. 딸을 처음 품에 안던 순간, 철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삼 년 뒤인 2005년에는 둘째 딸이 태어났다. 첫째 때와는 또..
2026.09.10 -
제주 파도 _ 자작 詩
바람과 친구하며제주 파도가 달려온다 때로는 다정하게때로는 매몰차게해안을 세차게 때린다 부서지고 또 부서져도다시 일어나끝없이 바다로 돌아간다 저 파도는지구가 다하는 날까지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앞에 선 나는잠시 머물다 사라지는작은 생명 하나 영원한 것 앞에서유한한 존재는말을 잃고 고개를 숙인다 오늘도 파도는아무 말 없이내게 묻는다 너는 지금어디쯤 와 있느냐고 ※ 9월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파도를 보며.... - 2026년 9월 08일(火, 乙酉日) 원강(沅杠) 씀 -
2026.09.09 -
≪마흔 해의 여정≫ _ 단편 소설 17장 (자작 글)
17장. 다시, 배움 S전자에서의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갔다. 전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철수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전문대라는 타이틀이 부끄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입사한 지 이 년째 되던 해, 철수는 편입을 결심했다. 회사에서 약 60킬로미터쯤 떨어진, 차로 한 시간 거리의 대학이었다. 1997년 3월, 철수는 그 학교 경영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그해는 나라 전체가 흔들리던 때였다. IMF 외환위기가 닥치며 회사도 어수선했고, 언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지 모르는 분위기였다. 그런 시기에 다시 학업..
2026.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