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어른, 어르신 그리고 명품인생

2024. 4. 29. 07:58마음의 양식/마음의 수행

얼의 성장을 기준으로 사람의 일생을 시기별로 나눠 부른

우리 옛분들의 지혜가 놀랍다.

사람이란 나이 들어 그냥 늙은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계속 성장하는 존재라는 가르침도 담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는 '노인'이라는 호칭을 '어르신'으로 바꿔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인복지과를 어르신복지과로 변경하는 식으로 모든 공문서와 공식 행사 등에서

'노인'보다는 공경의 의미가 담긴 '어르신'을 쓰겠다는 것이다.

 

어르신이라는 말 자체에 지혜를 갖추어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어른이라는 말 역시 그 자격과 책임이 이미 말 속에 들어 있다.

 

어린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열매가 영글듯 얼이 알차게 익는 과정이다.

그러니 어른이란 나무에 열린 실한 열매처럼 그 사회에서 결실을 맺을 

자격과 책임을 맡은 사람이다. 이것이 어른의 기준이다.

 

만19세가 지났다고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고, 환갑이 지나 백발이

되었다고 누구나 어르신으로 불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 자체에 담긴 얼의 기준을 충족해야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어르신으로서 공경받는 자리에 설 수 있다.

 

인생은 학생 때의 성적으로 결정 나지 않는다. 30대의 연봉으로 결정 나거나

50대의 지위로 결정 나는 것도 아니다.

죽음에 가까워진 노년의 삶이 어떠한가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

 

떠오르는 태양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저녁 무렵 하늘을 서서히 물들이면서 저무는 태양도 더없이 아름답다.

인생도 그렇다. 아름다운 말년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길이다.

이것이 어르신의 삶이고 명품 인생이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

이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운명이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다 같지는 않다.

우리 문화에서 죽음을 표현하는 말들은 상황에 따라 쓰였다.

먼저 한자말에는 죽은 사람의 신분에 따라 임금은 '붕어崩御', 제후는 '훙薨',

양반은 '졸卒', 평민은 '사死' 했다 한다.

 

한자말이 사람의 신분을 기준으로 삼은 것과는 달리,

우리말에서 죽음을 표현하는 말들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다간 사람인지를 따진다.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뒈졌다'고 하고

어떻게 산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 그냥 '죽었다'고 하고,

도리에 따라 산 사람에게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뒈졌다'는 말은 어감이 좀 거칠지만 결국 '되어졌다'는 뜻이니 '돌아갔다'는 말과 크게 다른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죽음을 뜻하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죽어서 하늘이 된다는 의미의 '천화天化'이다.

천화는 삶의 여정을 완성하고 맞이하는 가장 온전한 형태의 죽음이다.

얼을 완성한 어르신의 죽음을 '천화했다'고 한다.

어르신이 되어 천화하는 것이 곧 인간완성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출처] 우리말의 비밀   이승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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