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명리학사

1장 천지창조와 음양오행 _ 3. 氣와 에너지의 이분법_陰陽

沅杠(원강) 2025. 7. 22. 07:28
반응형

 
 
음양론은 우주나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과 생성 소멸을
음양이 쇠하고 사라지고 성하여 자라나며 유지되는 
상대적 평형 상태라고 보는 소장평형消長平衡과 양과
음이 한 번씩 변하면서 서로 전환되며 운동한다고 보는
상호전화相互轉化로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중국 후한 시대에 허신이 편찬한 자전字典인 「설문
해자說問解字」에 나오는 음양陰陽의 개념을 살펴
보면, 음陰과 양陽의 원시적原始的 의미로 태양의 빛을
받은 상태를 양陽, 태양의 빛을 받지 못하는 상태를
음陰으로 표현했다.
 
음陰은 어둡다는 뜻으로 운雲부에 "운雲은 구름이 해를
덮는 것이다. 운雲을 다라 만들어졌고 금성今聲이다.
음陰에서 阝변을 뺀 우변은 고문 운雲의 생략형이다."
라고 하였다. 양陽은 물勿부에 "역易은 열림의 의미이며,
'日'자, '一'자 그리고 '勿'자를 합하여 만들어졌다. 비양
(飛揚:날린다)이라 하기도 하고 장(長:길다)이라 하기도 
하며 강(强:굳세다)한 것이 많은 모양이라 하기도 한다."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원시적 의미의 음양陰陽은 자연현상인 햇빛과
밀접하게 관련된 용어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음양陰陽은 언덕 위로 해가 떠오르며 생기는 응달과
양달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음과 양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 하는 특성, 즉
양이 생길 때 동시에 음이 생기는 특성을 가리켜 '음양의
상대성'이라 하고,
둘째, 음과 양의 나눠짐과 관계없이 음양이 실현되는 점은
태극이라는 하나에서 비롯된다 하여 '음양의 일원성',
셋째, 음양이란 항상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의 개입에
따라 음과 양의 세력 변화가 일어나고 살아 움직이는 특성,
즉 '음양의 역동성'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음양이라는 단어가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갖고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며 다만 음양 관념의
전개로 보았을 때는 '주역' 자체의 괘사나 효사에는 음양
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으나, 주역 자체가 양의 부호인
양효(-)와 음의 부호인 음효(--)의 두 부호를 가지고 음양의
이론을 설명하려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념적
으로는 음양의 기원이 복희씨 시대의 하도河圖와
하 왕조의 낙서洛書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는다.
 
그러나 음양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타나는 문헌은 춘추
시대에 편찬된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날씨의 맑고 흐림이나 따뜻한 방향
등 자연의 모습에 대한 소박한 개념이나 표현, 즉 양달과
맑음은 양기로서 응달과 흐림은 음기로서 사용되었지
철학적이고 우주론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음과 양이라는 말에 철학적이고 우주론적인 개념이 나타
나기 시작한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같은
춘추시대의 기록에서인데, 「좌전」[소공昭公]에서
'"하늘에는 여섯 가지 기氣가 있으니, 내려오면 다섯
가지 맛을 낳고, 드러나면 다섯 가지 색이 되며, 모이면
다섯 가지 소리가 되고 어지럽히면 여섯 가지 병病이
된다. 여섯 가지 기氣는 음陰 · 양陽 ·  풍風 ·  우雨 ·
회晦 ·  명明 이다."라고 하였는데 여섯 가지의 기氣
중에 음과 양이 속해 있다.  이후에 전국시대로 접어들
면서 천지만물의 원리로 음양을 이해하는 구절들이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그리고 「주역」의
해설서인 「역전易傳」등에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명리학에서 유용하게 적용하는 설로서 
하늘의 별들로부터 음양이 유래되었다고 보는 '천체
기원설'이 있다.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전국시대에 활동하던 제자백가諸子百家 중의
한 유파로서 고대에 역상曆象을 관장하는 관직에 있던
희씨羲氏 · 화씨和氏에서 비롯된 음양가陰陽家들은
하늘의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의 별들과 28숙二十八宿
의 별들, 그리고 천문에서 음양陰陽이 유래했다고 말한다.
 
중국 당唐나라의 풍수 · 명리학자인 원천강袁天綱은 
그의 저서 「원천강오성삼명지남袁天綱五星三命指南」
에서 태양과 달과 다섯 행성, 그 밖의 태양계 별들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과 생물, 무생물의 생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하여 음양오행을 태양계의 별들과 연결
시키고 있다.

 
이러한 음양의 관념은 전국시대 음양가陰陽家의 시조
始祖로 불리는 추연鄒衍에 이르러 음양설과 오행설을
통합하여 체계적인 음양오행설이 성립되었는데 그는
음양의 기氣와 오행에서 발생하는 덕德의 소식消息
이론으로 사물의 변화를 설명하였다. 추연鄒衍은 본래
제齊나라 출신으로서 젊었을 때는 양梁나라에서 활동
하다가 나중에는 다시 제나라로 선왕宣王을 위하여 일한
사람이다. 대체로 그는 기원전 336년 전후에 활동을
시작하였고, 기원전 332년을 전후하여 제齊나라로 
돌아와 선왕의 직하대부稷下大夫가 되어 12년간
머물렀다. 10여 만자字로 이루어진 '음양종시陰陽終始'
는 바로 이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추연鄒衍은 
맹자孟子보다 약간 늦게 등장하여 음양오행설陰陽五行
設을 제창하였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상事象은
土 · 木 · 金 · 火 · 水의 오행상승五行相勝의 원리에
의하여 일어난다고 하였고, 이로써 역사의 추이推移나
미래에 대해 예견豫見하였다. 이것은 오행상생설五行
相生設과 더불어 중국 전통의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
事象의 기초가 되었다. 추연의 저서로는「추자鄒子」
49편,「추자시종鄒子始終」56편 등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마천이 쓴「사기열전史記列傳」가운데
「맹순열전孟荀列傳」에는 대략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추연鄒衍은 유묵儒墨의 학술, 특히 유가 사상으로써
당시의 정치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으며, 陰陽이론으로
재이災異를 설명함으로써 당시 통치자들의 행위를 견제
하려 하였고, 오덕종시五德終始라고 하는 역사 순환론을
해석해냄으로써 전통적인 천명사상天命思想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함과 아울러 이를 구체화하였다. 
 
이후 그의 음양이론은「여씨춘추呂氏春秋」[십이기
十二紀]에 영향을 주어서「십이기」에서는 음양이 생장
하고 소멸해가는 변화의 과정에 의해 사계절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을 연관지어 설명
하면서 나라의 정치적인 사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고 
천天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단계로까지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발전하여 전한시대前漢時代의 동중서董仲舒에
이르러 그는 음양오행설과 유교정치사상을 결합하여
천인감응天人感應 사상을 완성하였다.
 
동중서董仲舒의「춘추번로春秋繁露」[음양의陰陽義]
에서 "천지는 항상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하는 것이다."
라고 하여 천지는 음과 양의 변화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음양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로서
서로 협력의 관계, 대립의 관계, 보완의 관계, 상호작용에
의한 순환의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천지의 기氣는
합하여 하나가 되고, 구별하여 음양陰陽이 되며, 나뉘어
4계절四季節이 되고, 배열하여 오행五行이 된다."라고
하여 천기와 음양과 자연의 관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춘추번로」[동류상동同類相動]에서는 "하늘에는 음양
陰陽이 있고 사람에게도 음양陰陽이 있다. 천지의 음기가
일어나면 사람의 음기도 그에 응하여 일어난다. 사람의
음기가 일어나면 천지의 음기도 역시 마땅히 그것에 감응
하여 일어난다. 그것은 하나의 도道이다."라고 하여 음양을
통하여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한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천인감응사상은 인간과
자연의 일반적인 문제들뿐만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문제들까지 접근하게 되었고,
자연현상과 인사人事, 특히 군주의 정사政事가 대응관계에
있음을 강조하고, 따라서 군주의 통치는 천天에 순응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여 음양의 문제에서 시작한 논의가
오행으로 이어지고 결국 정치적인 문제와 치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까지 발전해 간다. 
 
 
 

 
[발췌]   명리학사    김기승, 나혁진  지음

728x90